출처: 송현경제연구소
남유럽 국가의 경제적 어려움의 원인은 뒤로 미루고 다음은 좀 부드러운 유럽의 일상생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조금씩 연재가 늦어져도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게으르기도 하고 바쁘기도하고 그럽습니다.
5. 독일의 비밀병기를 찾아서
독일, 프랑스, 벨기에 등의 국가는 일을 많이 안하고 사회보장 혜택을 많이 받으면서도 오랫동안 선진국으로서 경쟁력도 유지하고 있다. 찾기는 어렵지만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이런 유럽 국가들이 과거 식민지 지배를 통해 쌓아논 부(wealth) 때문에 별로 일하지 않고도 잘 살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은 부(wealth)와 소득(income)을 혼동하는 면이 있으며 또 몇 가지 사실관계만 짚어봐도 잘못됐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16세기에서 17세기 초에 걸쳐 전 세계를 거의 양분하면서 방대한 식민지를 가졌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경제가 시덥지 않고2011년부터는 심각한 재정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18세기에서 19세기까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많은 식민지를 가졌던 영국은 제조업 분야에서는 경쟁력이 있는 국가는 아니며 경제가 활력을 잃고 있다. 우리가 관심을 많이 갖는 독일은 식민지가 거의 없는 후발 제국주의 국가였다. 독일은 식민지 확보 등을 위해 일으켰던 제1·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여 오히려 그간 쌓아놓았던 국부마저 전쟁배상금과 폭격 등으로 큰 손실을 잃고 영토마저 쪼그라들었다.
일본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 전후 빠르게 성장하여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였다는 점은 독일과 비슷하지만 현재의 경제상황은 많이 다르다. 일본 경제는 1980년대 후반 한때 세계를 휩쓸 기세였지만 벚꽃(사쿠라)처럼 잠깐 화려하게 폈다가 바로 사그라져 버리고 있다. 일본 경제는 내수부족, 고령화, 디플레이션, 과다한 재정적자 등으로 활력을 잃고 조금씩 위축되고 있다. 거함이 여기저기 작은 누수로 인해 못느낄 정도로 천천히 침몰해가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일본인 스스로도 일본 경제의 미래와 지속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이 상당하다. 역사와 발전과정 등을 볼 때 일본보다 더 오래되고 더 늙은 경제일 수 있는 독일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활력과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독일과 일본의 어떤 차이가 두 나라 경제를 이렇게 다른 길로 가게 만들었을까? 일본의 폐쇄성을 생각할 때 숨겨논 비밀병기는 일본이 더 많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이에 대한 연구는 각 국가의 경제구조, 부문별 산업별 생산성, 소득 및 자산 분배구조, 정치 및 사회체제, 국민성, 문화와 역사 등 여러 면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어쩌면 여러 분야의 눈에 잘 안띄는 조그만 차이들이 모여져 경제 전체의 경쟁력과 국민의 삶의 수준을 좌우하고 나아가서는 국가의 운명을 결정지을런지 모른다. 이와 관련된 본격적인 작업은 전문지식과 많은 시간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여러 전문가들을 위한 숙제가 될 것이다. 여기서는 살아본 사람의 직관과 같은 고민을 한 사람들과의 토론 과정에서 얻은 지식을 기초로 독일의 숨겨논 비밀병기를 찾아보고자 한다.
필자가 찾아낸 비밀병기는 잠수함이나 인공위성 등과 같은 독일만이 갖고 있는 기술력이 아니라 독일은 당연한 것들이 지켜지는 사회 그리고 경제의 기본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즉 첫째, 정직한 사회라는 것 둘째, 정당한 보상시스템이 작동하는 경제라는 것 셋째, 더불어 사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것 넷째, 물가와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어 있다는 것, 이 네 가지가 독일 경제의 경쟁력을 장기적으로 유지시키는 핵심요인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것들은 숨겨진 것도 비밀스러운 것도 아니다. 당연하고 누구나 알 수 있지만 실제 다른 나라가 가져다 자기 것으로 만들기는 매우 어렵다. 특히 한국은 이 네 가지가 모두 쉽지 않은 과제이다.
* 독일경제 경쟁력의 원천은 독자적인 기반기술을 가진 많은 중소․중견기업이 경제의 중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필자도 독일 중소기업의 강점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중소․중견기업이 강한 일본, 이탈리아 경제를 생각해 보면 강한 중소기업만으로 독일경제의 경쟁력을 설명하기는 충분치 못하다. 어쩌면 강한 독일 중소기업의 존재는 원인이라기 보다 나타난 현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사회가 정직하다는 것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어마어마한 경쟁력이 원천이고 필자의 해외경험으로는 선진국과 후진국이 갈리는 기준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이 정직하면 서로를 신뢰할 수 있어 불필요한 사회적, 경제적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정책 수립·집행이 용이하고 정책 효과보다 정확하게 나타난다. 즉 국가의 효율성이 높아진다. 한국의 경우 대학이나 연구소의 연구개발자금, 중소기업 및 첨단기업에 대한 각종 지원자금이 대상이 잘못되거나 유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농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농민에게 지원되는 각종 정책자금도 용도 외로 사용되는 경우가 상당하다. 복지와 관련된 자금도 유사한 사례가 많다. 이러한 것들은 사회의 정직성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특히 정치인이나 관료의 정직성과 신뢰성은 그들의 능력을 떠나 역선택과 정책 실패의 가능성을 줄이는 중요한 요소다. 정책당국자들이 정직하다면 국민의 이익을 대변할 사람을 찾기 쉬울 뿐 아니라 실수를 하는 경우에도 같은 잘못을 두 번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둘째, 독일은 국민 경제에 대한 기여도에 상응한 보상체계가 상대적으로 잘 작용하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경쟁력의 원천이다. 엔지니어와 기능인이 높은 대우를 받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임금 격차가 적고 교수, 의사, 변호사들이 금전적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지 않는다. 독일의 아헨대학(공대가 유명) 에른스트슈마흐텐베르그총장은 2012년 3월 21일자 매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독일은 이공계의 위기가 없다고 하였다. 기업의 엔지니어가 의사보다 보수가 많기 때문이다. 당연히 뛰어난 인재가 이공계를 선택하고 과학과 공학이 발전한다는 것이다. 의사, 변호사, 교수, 공무원보다는 엔지니어와 기능인, 무역회사 직원, 연구소 연구원이 기술 개발과 수출 증대 등에 더 많은 기여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보수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보상체계를 갖춘 국가가 경쟁력이 강화되고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은 전국에 있는 의대·치대가 다 차야 서울대 공대 지원자가 나온다. 중소기업은 구인난에 시달리고 대기업 입사경쟁은 피 말리듯 치열하다. 젊은이들이 대학졸업도 뒤로 미룬 채 몇 년씩 고시,사시, 공시 등에 매달린다. 이는 한국의 의사, 공무원, 교수, 변호사 등의 보수, 직업 안정성, 명예,권력 등 종합적 대우가 비정상적으로 과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도한 대우는 국민 경제에 대한 기여도보다는 자격증의 제한, 진입 장벽, 채용시험 결과 등에 의해 결정되는 지대(rent)와 같은 성격이다. 즉 이들의 대부분은 열심히 일을 했겠지만 실질적으로 보면 보수의 일부분은 지대와 같은 불로소득인 셈이다. 이와 같은 전문직과 공공부문의 과도한 대우는 민간부문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과도한 격차로 나타난다. 한국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가 국민경제에 대한 기여도를 반영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더욱이 같은 기업내에서 거의 비슷한 일을 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임금과 후생복리 등의 차이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과도하다. 경제논리로 보면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은 직업의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더 많은 보수를 주어야 한다. 실제 유럽에서는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보수가 높은 사례도 많다.
셋째, 독일이 폭넓은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더불어 사는 사회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도 경쟁력 강화에 도움을 주고 있다. 사회보장제도 유지를 위한 높은 세금과 사회보장 혜택에 기댄 노동의욕 감퇴는 분명 경쟁력 약화 요인이지만 사회보장제도가 갖는 사회통합과 사회안전망 기능은 엄청난 경쟁력 강화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미국의 경우 대다수 도시의 한 부분은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슬럼지역이 있으며 빈민층은 자포자기로 범죄와 마약에 빠지며 이에 따른 노동력 상실이 심각하다.또한 치안 등을 위한 경찰력 유지 등 이에 대한 미국의 비용은 만만치 않다. 필자가 아는 한 독일을 포함 유럽의 도시중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지역은 없는 것 같다. 이것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자산이고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사회보장 혜택은 노동의욕을 감퇴시키는 면이 있지만 잘못되었을 때 최악의 상태를 피할 수 있는 안전망이 되기 때문에 경제의 역동성과 경쟁력을 높인다. 사회보장제도가 있기 때문에 개인은 단기적 보수와 안정성에 집착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 창의적인 것에 도전할 수 있다. 이것이 인문학과 기초과학의 발전, 다양한 중소기업의 설립과 성공 등으로 이어져 국민경제가 강해지는 것이다.독일의 사례에서 볼 때 사회보장제도도 도덕적 해이와 역선택이 적게 잘 구축되면 분배정책으로서 뿐 아니라 훌륭한 성장정책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넷째, 물가안정과 부동산가격 안정도 경쟁력 유지의 큰 요인이다. 독일의 소비자물가는 2000년 이후 연평균 1.7% 상승하여 유럽 중앙은행의 물가상승 목표인 2%를 넘지 않으면서 2%에 가까운 수준을 잘 유지하고 있다. 이와 함께 통독이후 2012년까지 전국주택가격상승률은 1% 내외로 소비자물가상승률보다 낮다. 이와 같은 물가와 부동산가격의 안정은 높은 세율과 적은 노동시간 등을 보완하며 국가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요인이다. 생계비와 주거비가 안정되어 있어 근로자들이 낮은 임금상승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준다. 또한 기업이나 개인 등 경제주체는 부동산가격 상승 등 투기적 이익보다는 생산적인 사업과 자신의 주어진 업무에 열중하게 된다. 즉 개인은 근무시간에 주가나 아파트 시세정보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고 기업가는 땅값 상승 가능성보다는 사업성을 기준으로 공장부지를 결정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독일은 겉으로는 안정되고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역동성있고 경쟁력있는 경제구조를 갖고 있는 셈이다. 반면 한국은 치열한 경쟁 때문에 겉으론 역동성있게 보이지만 실제는 보수적이고 경쟁력이 취약하다. 필자는 일본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일본 경제가 잠깐 화려했다가 바로 장기 위축의 길을 가고 있는 것도 독일에 비해 이 네 가지 병기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한다. 일본인의 역사 왜곡을 볼 때 정직성은 한계가 있고 사회보장제도도 유럽에 비해 훨씬 못 미치고 부동산거품은 한 때 세계에서 가장 심한 나라였다. 한국은 일본보다도 더 네 가지 병기를 갖추지 못한 것 같다. 일본 경제는 잠깐이라도 꽃을 피워봤지만 한국 경제는 잘못하면 꽃도 피우지 못하고 사그러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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